Art Critics
2019)상대성의 시각으로 보는 풍경 - 망막과 대상 사이에 부유하는 풍경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우주는 육각형 진열실들로 이루어진 부정수(不定數), 아니 아마도 무한수(無限數)로 구성되어 있다." . < Jorge Luis Borges > 『The Library of Babel』
조원정의 그림에서 화면의 저쪽은 지평선이나 수평선이며, 어쩌면 차안이나 피안 그 너머일 수도 있지만 매우 가까운 곳이라 여겨진다. 낯이 익긴 하지만 딱히 무엇이라 규정할 수 있는 형상이 없기에 이르는 말이다. 통상 미술사는 이런 형식의 그림을 서정적 추상이라 명명한다. 작가는 무엇인가를 격정적으로 그렸다. 그것은 작가의 내면일 수도, 자연일 수도, 어떤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니 그 화면에서 감상자가 특정한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해서 틀린 것도 아니다. 화면에 뭐가 드러났는지에 대한 의미부여와 해석은 전적으로 감상자의 몫으로 열려있다. 게다가 감상자 각자가 서로 어떤 연관성도 없는 대상에서 일정한 유형을 추출해 유비한 형상을 떠올리는 심리적 현상인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를 막을 방도가 없을 뿐 아니라, 화면에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은 형태소와 색채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바탕의 연두색과 갈색조의 선묘에서 호숫가의 수면과 메마른 물풀을, 푸른 바탕과 몇몇의 필선으로 이뤄진 화면에서 새벽녘의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도 있다. 이렇듯 조원정의 그림은 미술에서 추상이 어떻게 재현(여기서 재현은 여러 가지로 기능한다)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의 작품은 그러므로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망막과 대상의 사이에 정착하지 않고 부유하는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너무나 관념적인 추론이지만 공간에 떠도는 어떤 이미지를 파악하려는 의도이며, 대상이 가지는 잠재태, 변화가능성 그리고 더 나아가 기존의 실체에 대한 시지각적 회의를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재현의 관점에서 조원정의 근작을 살펴 보자면, 얼핏 구체적 형상의 결핍으로 인하여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한 관심이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는 작가 초기시기부터 특정한 사물이나 풍경을 그려내고는 있었다. 이를테면 시장골목 풍경이나 개나리, 해바라기 등의 꽃이나 계절 단상의 풍경들이 그렇다. 어쩌면 작가의 작업에서 추상은 불현듯 돌출된 경우가 아닌, 추상이 출현할 수 있는 선행과정과 예비 작업이 전작에서 이미 상당할 정도로 뒷받침되고 있었다고도 볼 수가 있겠다. 작가 자신의 하고 싶은 말을 절제하고 대상에게서 받은 인상을 기록했다가 정수(精髓))만 풀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연관성이 감상자에게 현재 작품에서 어떤 해석학적 의미를 지니는 지에 대해서는 가늠이 쉽지 않다. 아마도 ‘이성적 존재가 되려면 감각을 불신하라’라고 외친 데카르트 이후, 혹여 작가가 사실주의는 대상을 이성적으로 정확하게 규정하려다 대상의 불확실성만을 깨달은 형식임을 간파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추상을 포함하여 무엇인가의 종언을 선언하는 미학적 강령들의 진정한 의도는 위기에 처한 형식을 긴급 복구하고 연장하는 방법론이다. 여하튼(형식을 죽이든 살리든) 그가 지향하고 있는 지점은 대상과 주체 사이의 어디쯤이다. 무릇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확신과 회의가 공존하듯이, 조원정에게도 현재로서는 분명하지 않아서인지(그 확신과 회의가 최근 지우고 덧칠하는 새로운 작업의 이슈가 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주체와 대상 어디에도 방점을 두지 않는 편이다. 어찌 보면 그림에 있어 사물과 이미지는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이미지가 그것을 생산한 대상에 의존적이며 지시적인 존재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의 그림이 말해주듯이 그는 전적으로 대상의 이미지에 상관된 현상을 그린다. 그러므로 이미지란 대상과 망막 사이의 매개로 인식되고, 그것이 지닌 불확정성, 불명료성이 오히려 그림의 실질적인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주체와 대상의 미묘한 길항관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소위 구상과 추상이 혼재된 반추상이나 반구상의 영역을 초월한다. 조원정은 이처럼 즉물적 형상의 해체를 통해 다만 대상의 고정된 순간포착에 머물 뿐인 이미지의 인식영역을 확장시킨 경우로도 보인다. 그렇다면 조원정의 그림에서 이미지는 비록 추상적이지만, 역설적으로 동시에 현상의 실체를 더욱 더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주의 화가들이 사물의 명료함을 찾아 끊임없는 탐구를 추구했다면, 그는 오히려 불명료함으로 축적된 이미지의 세계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인식론적 분석에 근거했던 사물과 세계에 대한 태도를 지양하고, 상대적 유비와 같은 이미지 세계의 재현을 재고하려는 의도가 선행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재현’이라, 사실주의가 아닌 추상에서 이 용어는 심히 낯설다. 그럼에도 조원정은 추상을 재현한다. 굳이 재현이라 표현하는 것은 그 감각의 발원지가 자연의 풍경에 기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현회화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체계가 바뀌었음을 지시한다. 밝혔듯이 작품에 드러난 서정적 감각이 어떤 형상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리 없다. 까닭에 조원정에게 형식의 이쪽과 저쪽은 별 의미가 없다. 조원정은 살갗에 생생하게 와 닿는 다채로운 감각에 관심을 기울인 근작에서 그 모호함을 점점 배가한다. 게다가 매우 충동적이고 표현적이다. 이런 측면을 고려해 볼 때, 그의 작품을 추상표현주의와 상관해도 그다지 오류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전의 추상이나 추상표현주의가 어떤 대상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주체의 사유에 대한 질문을 반영하는 것이었다면, 이 관계 항에서 조원정의 그리기는 다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매체의 물질적 속성에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따지자면 표현주의의 거친 호흡에 관계한다. 그런 호흡 즉 에너지는 작가의 일상에서 채집한 자연과 일시적 혹은 지속적 교감과 인상을 적절히 그리려는 것이 아닌, 즉 무엇을 어떻게 그릴까 하는 것이 아니라 즉발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자신만의 매체적 감각으로 몸에서 끄집어낼까 하는 제스처에서 분출된 것이다. 그것은 마치 회화에 있어서 공간보다는 현재라는 시간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현재는 정말 인식할 수 있을까? 너무나 찰나이기에 감지할 수 없는, 과거에서 미래로의 이행 과정 중의 한 순간 일뿐인가? 여하튼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현재는 늘 존재할 것이므로 현재는 영원과 찰나의 기묘한 경계의 조합이다. 결국 그가 접하는 대상은 하나의 시간이 아니라 각자의 시간이 있었던 것/곳이었다. 따라서 견고하게 굳어진, 절대적인 형태는 없다는 주의다. 어찌 보면 무릇 회화가 그렇듯, 작가가 주장하지 않을지라도 화면에서 자생하는 형상과 그 외부로부터 부여되는 형상이 융합할 때 생성되는 심리적 풍경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감상자의 숫자만큼이나 ‘부정수, 아니 아마도 무한수’의 풍경이 생성될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그가 그리는 것이 반드시 꽃이요, 나무요, 물이요, 숲일 필요는 없다. 화면은 그저 형상을 빌려 의미를 전하고, 몸을 통한 사유의 이미지를 발현하는 장이면 된다. 나아가 그는 근대의 합리적 주체를 대신할 ‘신체로서의 인간’을 말하는 메를로 퐁티의 신체현상학 체계를 빌려 ‘몸’으로 기억한 인상의 내재적 현재성을 화면에 즉발적으로 부려놓고 있다고 말한다. 그 인상은 작가가 대상에서 추출한 것이 아니라 대상이 제공한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는 모호해진다. 대상이 전하는 다양하고 낯선 감각체험들은 이제 하나의 객관적인 명제로 설명할 수도, 완전히 주관적인 인상으로만 그려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모호한 이미지는 몸 아래서 솟구치는 격정의 물결에서 발원한 것이다. 마치 감각적 현재를 잡으려는 듯 분초를 다퉈 휘몰아친 선묘와 색채는 작가가 스스로 밝히듯이 ‘지금 막 생성된 순간순간의 진솔한 느낌과 감정들을 한 켜 한 켜 그림에 옮겨’ 놓으려는 작가의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의 몸부림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와 조우하는 ‘그림놀이’, 즉 유희의 ‘퍼포먼스(performance)’이다. 작가는 이를 흥미로운 소통이라 했지만, 이는 조응(correspondence)에 가깝다. 대상이 무엇인가 제공하면 작가가 반응하고, 역으로 작가가 슬프면 대상은 눈물짓는 일종의 연동하는 관계이다. 작가는 ‘대상을 그대로 형상화하기 보다는 자연이 전해주는 그 영감을 좇아 몸과 마음이 주도하는 대로 붓을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러운 몸짓과 흥이 우러나오는 것을 경험’하며, 때때로 주객이 전도’되는 양상이라고 자가 진단한다. 이를테면 자연을 작가 자신의 작업 맥락에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 방식에 가깝다. 또한 ‘본다’라는 행위는 망막을 통해 빛이 전달하는 사물의 형태, 색상으로 사물을 인지하는 행위이다. 작가는 자신이 인지한 사물과 타자가 보고 인지한 것이 같지 않을 수 있다라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의 감정상태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간파한다. 예컨대 화사한 개나리 꽃의 노랑이 세월호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노란 리본으로, 봄날의 그 화려한 벚꽃의 연 분홍빛이 울분과 동시에 처연한 슬픔을 머금은 빛깔로 보이는 이유일 게다. 세상에 늘 같은 것이 있을까?! 명확히 실체를 정의할 수 있을까?! 혹자가 ‘어떤 진리에도 머물지 말라. 그것을 다만 한 여름 밤을 지낼 천막으로 여기고 그곳에 집을 짓지 말라’고 경고한 것은 바로 이런 진리의 상대성과 유동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말이리라.
게다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어떤 상황을 분리해내는 행위, 즉 감각적 선택을 하는 행위임에 필연적으로 배제라는 작가들의 인위적인 개입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절대적이거나 객관적인 이미지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 따라서 조원정이 그려낸 이미지는 구체적인 무엇이 아니라, 무엇 같기도 하고 무엇도 아닌, 작가의 내적인 그 무엇이다. 근작에서 조원정의 내적 시선은 대체로 미시적인 시각을 유지한다. 색채와 어울려, 급격하게 몸으로 내달린 선들의 꼴은 어떤 구체성 혹은 물리적 존재성을 확연히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런 선과 색채들이 형성한 이미지들은 감상자의 초점을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회색지대에 머물게 하는 방식이다. 조원정의 그림은 감상자에게 미시적 시각을 확장하여 거시적으로 다른 형태를 인지하게 유도한다. 감상자의 시각에서 근접해서 바라볼 때 대상의 모호함은 일종의 판타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판타지를 증폭시키는 역할은 작가의 호흡을 감지케 하는 속도와 유려한 색채가 담당한다. 나아가 모호함이 동반하는 심리적 판타지는 기존의 그림과는 다른 차원의 미적 감성을 드러내게 된다. 이렇듯 조원정의 작품이 감상자에게 제시하는 것은 풍경에서 가려졌던 비형태를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대상 간의 거리, 즉 대상을 지각하는데 시간적/시각적 편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재인식하게 한다는 점이다. 침묵(식물과 인간의 소통언어가 다르므로)하는 대상인 자연의 변화무상한 이미지를 오랜 시간 동안의 깊은 관조와 기억을 통해, 형상의 적확성에 호소하는 이미지를 넘어 ‘자연(自然)-스스로 그러함’을 기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결국 자연을 대하는 태도로서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과거의 재현적 그림과 유사하지만 하나의 차이점을 발견하자면, 최근 작가의 작업방식은 풍경에 담긴 추상적 지표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자연과 작가 내면을 합치시킨 미적 질서를 직관적 이미지로 담아냈다는 점이다. 직관적이라 함은 우연과 필연의 융합을 일컫는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의 작품은 전적인 무상(無想)이나 전적인 의도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고로 작품이란 우연에 열려있어야 하되, 그 우연들이 산산이 흩어지지 않는 가느다란 필연의 고리들이 요구된다. 그의 작업이 모호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런데도 우리의 시각을 자극하는 이유는 작가 특유의 내적 시선으로 표현한 그림들이 작가와 자연이 조응한 풍경이며, 이분법적인 미적 형식의 경계를 매우 효과적으로 비껴가며 회화적 내음을 짙게 풍기는 화면을 창출했다는 점이다. 이는 이제 특정한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자연의 타자를 넘어 나/자연으로 되돌아오는 시공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구별이 없음을 증거하기 위해 붓질은 화면 위를 그렇게 종행으로 바쁘게 그러나 자연에 이끌리듯 내달렸던 것이다. 그럼으로 해서 노란, 붉은, 푸른, 초록, 검은 빛의 형상이 화면 위에서 다 휘발한 뒤에도 꽃으로, 나무로, 대지로, 갯벌로, 물풀로 다시 피는 것이다.유 근 오 ( 미 술 평 론 )
A Landscape floating between the retina and the subject
"The Universe (which others call the library) is composed of an indefinite, perhaps infinite number of hexagonal galleries." < Jorge Luis Borges > 『The Library of Babel』
In Jo Wonjeong's painting, the other side of the canvas may be either the land horizon or the sea horizon, perhaps this world or nirvana, but nonetheless, is considered somewhere very close. The is the term made because it is familiar, but there are no features that can be defined as something. Usually, art history refers to this type of painting as lyrical abstracts. The artist painted something passionately. It can be the artist's inner side, nature, or some phenomenon. So it's not wrong for the viewer to find something specific on the canvas. The meaning and interpretation of what appears on the canvas are entirely open to the viewer. Furthermore, this is because not only can there be no way to prevent Pareidolia, a psychological phenomenon in which each viewer extracts a certain type from a subject that has no connection to each other, but it can also have a morphology and color that are not so familiar to the canvas. Some may feel the surface of a lake and dry water grass from the background of the pale green and brown lines, and some may feel the fresh air of dawn on a canvas consisting of the blueish background and a few lines. Jo's painting starts with a question about how abstracts are reproduced in art (here, reproduction functions in various ways). Jo’s work does not depict the subject itself, but depicts a floating image that doesn’t settle between the retina and the subject. This analysis is a very conceptual reasoning, but it is intended to capture any image floating in space, suggesting the potential pattern of the subject, the variability, and, more importantly, visual and perceptual skepticism about the existing entity.Looking at Jo's latest work from a point of view of reproduction, it is also true that the lack of concrete features sometimes makes one wonder if the artist even has any interest in a particular subject. Of course, Jo has been painting certain objects or landscapes since the early days as an artist: for example, landscapes or flowers such as a market alley, forsythia, and sunflowers. Perhaps, the abstraction in Jo’s work does not emerges all of a sudden, but is backed up by the preliminary work in the previous pieces to a considerable extent. The artist refrained from saying what he wanted to say, recorded the impression he received from the subject, and has only depicted the quintessence. However, it is not easy to tell what the current interpretation means to the viewer. Perhaps after Descartes, who called out, "To be a rational being, distrust your senses," the artist might have realized that realism is a form in which one only realizes uncertainty in the subject while trying to define it rationally and accurately. But the real intention of aesthetic codes to declare an end to something, including abstraction, is the methodology of restoring and extending the endangered forms. In any case, the point Jo is aiming for is somewhere between the main agent and the subject. Just as artists often share confidence and skepticism in their works, Jo, too, is not focusing on either the main agent or the subject perhaps because it is not clear at the moment (it can also be seen that confidence and skepticism have recently become the issue of new work that have been erased and added). In a way, objects and images may be separate issues in painting, but the artist does not deny that images are dependent and indicative on the subject that produced them. As his painting suggests, he paints a phenomenon that is entirely correlated with the image of the subject. Thus, an image is recognized as a medium between the subject and the retina, and the uncertainty and obscurity it possesses are becoming the de facto subject of the painting. Jo’s painting thus transcends the realm of semi-abstraction or semi-conception, where so-called conception and abstraction are mixed although it maintains a delicate rivalry between the main agent and the subject. Jo’s work is also seen as a case of expanding the recognition area of images that only stay in a fixed instant capture of the subject through the dismantling of the realistic forms.If so, the images in Jo's painting, although abstract, are paradoxically a more realistic representation of the reality of the phenomenon at the same time. If the realist painters sought constant exploration in search of clarity of things, Jo rather seeks to find a world of images accumulated in obscurity. This suggests that the intention to avoid attitudes to objects and to the world that have been based on a cognitive analysis to date was being preceded by a desire to reconsider the reproduction of an image world, such as relative analogy. The term “reproduction” feels deeply unfamiliar in abstraction, unlike in realism. Nevertheless, Jo reproduces abstraction. That it is expressed as reproduction indicates a change in the fixed perception system of the reproduction painting although it is also because the origin of the sensation is due in part to the natural landscape. As mentioned, it is not strange for the lyrical senses revealed in Jo’s work to contain certain form images. For this reason, whether it is this or that side of the form means nothing to Jo. He increasingly redoubles the ambiguity in his recent work, which paid attention to the colorful sensation that touches the skin vividly. Besides, it is very impulsive and expressive. Given this aspect, it is unlikely that we would err if we related his work to abstract expressionism. If previous abstraction or abstract expressionism were not quests for any subjects, but rather reflected questions about the reasons of the main agent painting, Jo's painting in this referent seems to occupy a different position. That does not mean that the artist focuses on the material properties of the medium though. It is concerned with the heavy breathing of expressionism. Such breathing, or energy, is not intended to adequately portray the nature collected in the artist's daily life, but rather to express how to draw it out of the body with his own media senses.It seems to be taking issue with time of the present rather than the space in painting. How can you define the present? Can you really perceive it? Is it just one of those moments of transition from the past to the future that you can't detect? It is an exquisite combination of peculiar boundaries of eternity and moments as it will always exist throughout the course of time. After all, the subject the artist encountered was not a single point in time, but the object/place that each time existed. Therefore, it is a belief that there is no absolute form that is solidified. In a way, as in any painting, even if the artist does not insist, it is the psychological landscape created when self-generated form and external form are merged. Here an “indefinite number, or perhaps an infinite number” of landscapes will be created as much as the number of the viewers. At this point, what he paints needs not be flowers, trees, water, or forests. The canvas is simply a place where images are shown to convey meaning borrowing forms and to express the images of reasoning through the body. Furthermore, he says that he borrows Merleau-Ponty’s physical phenomenology system, which refers to a "human as a body" to replace the rational entity of the modern era, and instantly puts the intrinsic presentness of the impression he remembered as a "body" on the canvas. The impression was not extracted from the subject by the artist, but provided by the subject. Thus, the image becomes blurred. This is because the diverse and unfamiliar sensory experiences that the subject conveys now cannot be described as an objective proposition or portrayed as a completely subjective impression.The vague image originated from a wave of passion rising from beneath the body. Raging drawing and coloring that seems to try to grasp the sensory present is no other than, as the artist himself confessed, the artist's struggle to “put the true feelings and emotions of the moment that have just been created on the canvas meticulously.” But it's not a struggle of pain, but a "play of painting” or "performance of amusement" that encounters the unknown world. The artist called it an interesting communication, but it is more like a correspondence. It is an interlocking relationship in which when the subject provides something, the artist responds to it, and conversely, when the artist is in a sad mood, the subject sheds tears. The artist self-analyzes that “rather than giving form to the subject as it is, he experiences natural gestures and excitement spring up when moving the brush as the body and mind lead in pursuit of the inspiration that nature conveys, and it is sometimes an inversed relationship.” For example, it is not about placing nature in the artist's own context of work, but rather it is close to listening to what the subject says. Also, "seeing" is the act of recognizing things through the retina in the form and color of things that light transmits. The artist not only sees that things he perceives may not be the same as what others perceive, but also that there may be differences depending on his own emotional state. For example, the yellow of the bright forsythia is a yellow ribbon waiting for the children of the Sewol ferry to return, and the light pink of the colorful cherry blossom on a spring day may appear to be the color of sadness and frustration at the same time. Is there anything in the world that stays always the same?! Can you clearly define what it really is?! Some say, “Don't stay in any truth. Do not build a house there, considering it only as a tent for a summer night.” This is said with the relativity and liquidity of truth in mind.In addition, the term “an absolute or objective image” is not appropriate because painting itself is an act of separating a situation from a certain time and space, namely an act of making a sensory choice, which inevitably requires the artist's artificial intervention, or "excluding." Therefore, the images Jo has painted are not something concrete, but something that looks like a thing or not, or something that reflects the artist's inner self. In his recent works, Jo’s inner gaze largely maintains a microcosmic view. The sudden physical appearance of the lines running through the body along with the colors does not clearly reveal any specificity or physical presence. The images formed by these lines and colors are a way of keeping the viewer's focus in the gray area of the visible and non-visual. Jo's painting induces the viewers to extend the microscopic perspective to recognize different macroscopic shapes. Looking close from the viewer's point of view, the subject's ambiguity may become a fantasy. And the speed and elegant colors that make you sense the artist’s breathing play the role of amplifying this fantasy. Furthermore, the psychological fantasy, accompanied by ambiguity, reveals a different level of aesthetic sensibility from the existing paintings. What Jo's work suggests to the viewer is that it discovers the hidden forms of the landscape and in the process re-recognizes the distance between the subjects, in other words the fact that there is a time/visual deviation in perceiving the subject. It is meaningful that the changed image of nature, which is subject to silence (because the language of plants and humans is different), has been recorded as "nature (it is of itself)" beyond the image appealing to the fitness of the shape through a long period of deep observation and memory. After all, the basic prerequisites for dealing with nature are similar to the reproductive paintings of the past, but one difference is that the latest work style of the artist captures an intuitive image of the aesthetic order that combines nature with his inner side based on inspiration from abstract indicators contained in the landscape. “Intuitive” here refers to the fusion of chance and inevitability. In other words, his work is not based on “full impassivity” or “full intention.” Therefore, an art work should be open to coincidences, but they require a thin set of necessary links that do not let them scatter. Although his work may seem vague, the reason why it stimulates our view is that his painting, which are expressed with the artist's own inner view, shows landscapes adapted by the artist and nature, and creates a scene that exudes a deep sense of artistic scent by deflecting the boundaries of the dichotomous aesthetic form very effectively. This is now the time and space of returning to self/nature beyond the others of nature, not something of someone specific. To prove the lack of distinction, the brush was so busy running on the canvas that it was driven by nature. That's why the yellow, red, blue, green, and black forms bloom again as flowers, trees, land, mudflat, and water plants even after they are all volatilizing on the canvas.
Yu Geun-oh (Art Critique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우주는 육각형 진열실들로 이루어진 부정수(不定數), 아니 아마도 무한수(無限數)로 구성되어 있다." . < Jorge Luis Borges > 『The Library of Babel』
조원정의 그림에서 화면의 저쪽은 지평선이나 수평선이며, 어쩌면 차안이나 피안 그 너머일 수도 있지만 매우 가까운 곳이라 여겨진다. 낯이 익긴 하지만 딱히 무엇이라 규정할 수 있는 형상이 없기에 이르는 말이다. 통상 미술사는 이런 형식의 그림을 서정적 추상이라 명명한다. 작가는 무엇인가를 격정적으로 그렸다. 그것은 작가의 내면일 수도, 자연일 수도, 어떤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니 그 화면에서 감상자가 특정한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해서 틀린 것도 아니다. 화면에 뭐가 드러났는지에 대한 의미부여와 해석은 전적으로 감상자의 몫으로 열려있다. 게다가 감상자 각자가 서로 어떤 연관성도 없는 대상에서 일정한 유형을 추출해 유비한 형상을 떠올리는 심리적 현상인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를 막을 방도가 없을 뿐 아니라, 화면에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은 형태소와 색채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바탕의 연두색과 갈색조의 선묘에서 호숫가의 수면과 메마른 물풀을, 푸른 바탕과 몇몇의 필선으로 이뤄진 화면에서 새벽녘의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도 있다. 이렇듯 조원정의 그림은 미술에서 추상이 어떻게 재현(여기서 재현은 여러 가지로 기능한다)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의 작품은 그러므로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망막과 대상의 사이에 정착하지 않고 부유하는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너무나 관념적인 추론이지만 공간에 떠도는 어떤 이미지를 파악하려는 의도이며, 대상이 가지는 잠재태, 변화가능성 그리고 더 나아가 기존의 실체에 대한 시지각적 회의를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재현의 관점에서 조원정의 근작을 살펴 보자면, 얼핏 구체적 형상의 결핍으로 인하여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한 관심이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는 작가 초기시기부터 특정한 사물이나 풍경을 그려내고는 있었다. 이를테면 시장골목 풍경이나 개나리, 해바라기 등의 꽃이나 계절 단상의 풍경들이 그렇다. 어쩌면 작가의 작업에서 추상은 불현듯 돌출된 경우가 아닌, 추상이 출현할 수 있는 선행과정과 예비 작업이 전작에서 이미 상당할 정도로 뒷받침되고 있었다고도 볼 수가 있겠다. 작가 자신의 하고 싶은 말을 절제하고 대상에게서 받은 인상을 기록했다가 정수(精髓))만 풀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연관성이 감상자에게 현재 작품에서 어떤 해석학적 의미를 지니는 지에 대해서는 가늠이 쉽지 않다. 아마도 ‘이성적 존재가 되려면 감각을 불신하라’라고 외친 데카르트 이후, 혹여 작가가 사실주의는 대상을 이성적으로 정확하게 규정하려다 대상의 불확실성만을 깨달은 형식임을 간파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추상을 포함하여 무엇인가의 종언을 선언하는 미학적 강령들의 진정한 의도는 위기에 처한 형식을 긴급 복구하고 연장하는 방법론이다. 여하튼(형식을 죽이든 살리든) 그가 지향하고 있는 지점은 대상과 주체 사이의 어디쯤이다. 무릇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확신과 회의가 공존하듯이, 조원정에게도 현재로서는 분명하지 않아서인지(그 확신과 회의가 최근 지우고 덧칠하는 새로운 작업의 이슈가 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주체와 대상 어디에도 방점을 두지 않는 편이다. 어찌 보면 그림에 있어 사물과 이미지는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이미지가 그것을 생산한 대상에 의존적이며 지시적인 존재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의 그림이 말해주듯이 그는 전적으로 대상의 이미지에 상관된 현상을 그린다. 그러므로 이미지란 대상과 망막 사이의 매개로 인식되고, 그것이 지닌 불확정성, 불명료성이 오히려 그림의 실질적인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주체와 대상의 미묘한 길항관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소위 구상과 추상이 혼재된 반추상이나 반구상의 영역을 초월한다. 조원정은 이처럼 즉물적 형상의 해체를 통해 다만 대상의 고정된 순간포착에 머물 뿐인 이미지의 인식영역을 확장시킨 경우로도 보인다. 그렇다면 조원정의 그림에서 이미지는 비록 추상적이지만, 역설적으로 동시에 현상의 실체를 더욱 더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주의 화가들이 사물의 명료함을 찾아 끊임없는 탐구를 추구했다면, 그는 오히려 불명료함으로 축적된 이미지의 세계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인식론적 분석에 근거했던 사물과 세계에 대한 태도를 지양하고, 상대적 유비와 같은 이미지 세계의 재현을 재고하려는 의도가 선행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재현’이라, 사실주의가 아닌 추상에서 이 용어는 심히 낯설다. 그럼에도 조원정은 추상을 재현한다. 굳이 재현이라 표현하는 것은 그 감각의 발원지가 자연의 풍경에 기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현회화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체계가 바뀌었음을 지시한다. 밝혔듯이 작품에 드러난 서정적 감각이 어떤 형상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리 없다. 까닭에 조원정에게 형식의 이쪽과 저쪽은 별 의미가 없다. 조원정은 살갗에 생생하게 와 닿는 다채로운 감각에 관심을 기울인 근작에서 그 모호함을 점점 배가한다. 게다가 매우 충동적이고 표현적이다. 이런 측면을 고려해 볼 때, 그의 작품을 추상표현주의와 상관해도 그다지 오류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전의 추상이나 추상표현주의가 어떤 대상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주체의 사유에 대한 질문을 반영하는 것이었다면, 이 관계 항에서 조원정의 그리기는 다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매체의 물질적 속성에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따지자면 표현주의의 거친 호흡에 관계한다. 그런 호흡 즉 에너지는 작가의 일상에서 채집한 자연과 일시적 혹은 지속적 교감과 인상을 적절히 그리려는 것이 아닌, 즉 무엇을 어떻게 그릴까 하는 것이 아니라 즉발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자신만의 매체적 감각으로 몸에서 끄집어낼까 하는 제스처에서 분출된 것이다. 그것은 마치 회화에 있어서 공간보다는 현재라는 시간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현재는 정말 인식할 수 있을까? 너무나 찰나이기에 감지할 수 없는, 과거에서 미래로의 이행 과정 중의 한 순간 일뿐인가? 여하튼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현재는 늘 존재할 것이므로 현재는 영원과 찰나의 기묘한 경계의 조합이다. 결국 그가 접하는 대상은 하나의 시간이 아니라 각자의 시간이 있었던 것/곳이었다. 따라서 견고하게 굳어진, 절대적인 형태는 없다는 주의다. 어찌 보면 무릇 회화가 그렇듯, 작가가 주장하지 않을지라도 화면에서 자생하는 형상과 그 외부로부터 부여되는 형상이 융합할 때 생성되는 심리적 풍경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감상자의 숫자만큼이나 ‘부정수, 아니 아마도 무한수’의 풍경이 생성될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그가 그리는 것이 반드시 꽃이요, 나무요, 물이요, 숲일 필요는 없다. 화면은 그저 형상을 빌려 의미를 전하고, 몸을 통한 사유의 이미지를 발현하는 장이면 된다. 나아가 그는 근대의 합리적 주체를 대신할 ‘신체로서의 인간’을 말하는 메를로 퐁티의 신체현상학 체계를 빌려 ‘몸’으로 기억한 인상의 내재적 현재성을 화면에 즉발적으로 부려놓고 있다고 말한다. 그 인상은 작가가 대상에서 추출한 것이 아니라 대상이 제공한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는 모호해진다. 대상이 전하는 다양하고 낯선 감각체험들은 이제 하나의 객관적인 명제로 설명할 수도, 완전히 주관적인 인상으로만 그려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모호한 이미지는 몸 아래서 솟구치는 격정의 물결에서 발원한 것이다. 마치 감각적 현재를 잡으려는 듯 분초를 다퉈 휘몰아친 선묘와 색채는 작가가 스스로 밝히듯이 ‘지금 막 생성된 순간순간의 진솔한 느낌과 감정들을 한 켜 한 켜 그림에 옮겨’ 놓으려는 작가의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의 몸부림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와 조우하는 ‘그림놀이’, 즉 유희의 ‘퍼포먼스(performance)’이다. 작가는 이를 흥미로운 소통이라 했지만, 이는 조응(correspondence)에 가깝다. 대상이 무엇인가 제공하면 작가가 반응하고, 역으로 작가가 슬프면 대상은 눈물짓는 일종의 연동하는 관계이다. 작가는 ‘대상을 그대로 형상화하기 보다는 자연이 전해주는 그 영감을 좇아 몸과 마음이 주도하는 대로 붓을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러운 몸짓과 흥이 우러나오는 것을 경험’하며, 때때로 주객이 전도’되는 양상이라고 자가 진단한다. 이를테면 자연을 작가 자신의 작업 맥락에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 방식에 가깝다. 또한 ‘본다’라는 행위는 망막을 통해 빛이 전달하는 사물의 형태, 색상으로 사물을 인지하는 행위이다. 작가는 자신이 인지한 사물과 타자가 보고 인지한 것이 같지 않을 수 있다라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의 감정상태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간파한다. 예컨대 화사한 개나리 꽃의 노랑이 세월호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노란 리본으로, 봄날의 그 화려한 벚꽃의 연 분홍빛이 울분과 동시에 처연한 슬픔을 머금은 빛깔로 보이는 이유일 게다. 세상에 늘 같은 것이 있을까?! 명확히 실체를 정의할 수 있을까?! 혹자가 ‘어떤 진리에도 머물지 말라. 그것을 다만 한 여름 밤을 지낼 천막으로 여기고 그곳에 집을 짓지 말라’고 경고한 것은 바로 이런 진리의 상대성과 유동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말이리라.
게다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어떤 상황을 분리해내는 행위, 즉 감각적 선택을 하는 행위임에 필연적으로 배제라는 작가들의 인위적인 개입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절대적이거나 객관적인 이미지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 따라서 조원정이 그려낸 이미지는 구체적인 무엇이 아니라, 무엇 같기도 하고 무엇도 아닌, 작가의 내적인 그 무엇이다. 근작에서 조원정의 내적 시선은 대체로 미시적인 시각을 유지한다. 색채와 어울려, 급격하게 몸으로 내달린 선들의 꼴은 어떤 구체성 혹은 물리적 존재성을 확연히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런 선과 색채들이 형성한 이미지들은 감상자의 초점을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회색지대에 머물게 하는 방식이다. 조원정의 그림은 감상자에게 미시적 시각을 확장하여 거시적으로 다른 형태를 인지하게 유도한다. 감상자의 시각에서 근접해서 바라볼 때 대상의 모호함은 일종의 판타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판타지를 증폭시키는 역할은 작가의 호흡을 감지케 하는 속도와 유려한 색채가 담당한다. 나아가 모호함이 동반하는 심리적 판타지는 기존의 그림과는 다른 차원의 미적 감성을 드러내게 된다. 이렇듯 조원정의 작품이 감상자에게 제시하는 것은 풍경에서 가려졌던 비형태를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대상 간의 거리, 즉 대상을 지각하는데 시간적/시각적 편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재인식하게 한다는 점이다. 침묵(식물과 인간의 소통언어가 다르므로)하는 대상인 자연의 변화무상한 이미지를 오랜 시간 동안의 깊은 관조와 기억을 통해, 형상의 적확성에 호소하는 이미지를 넘어 ‘자연(自然)-스스로 그러함’을 기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결국 자연을 대하는 태도로서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과거의 재현적 그림과 유사하지만 하나의 차이점을 발견하자면, 최근 작가의 작업방식은 풍경에 담긴 추상적 지표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자연과 작가 내면을 합치시킨 미적 질서를 직관적 이미지로 담아냈다는 점이다. 직관적이라 함은 우연과 필연의 융합을 일컫는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의 작품은 전적인 무상(無想)이나 전적인 의도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고로 작품이란 우연에 열려있어야 하되, 그 우연들이 산산이 흩어지지 않는 가느다란 필연의 고리들이 요구된다. 그의 작업이 모호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런데도 우리의 시각을 자극하는 이유는 작가 특유의 내적 시선으로 표현한 그림들이 작가와 자연이 조응한 풍경이며, 이분법적인 미적 형식의 경계를 매우 효과적으로 비껴가며 회화적 내음을 짙게 풍기는 화면을 창출했다는 점이다. 이는 이제 특정한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자연의 타자를 넘어 나/자연으로 되돌아오는 시공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구별이 없음을 증거하기 위해 붓질은 화면 위를 그렇게 종행으로 바쁘게 그러나 자연에 이끌리듯 내달렸던 것이다. 그럼으로 해서 노란, 붉은, 푸른, 초록, 검은 빛의 형상이 화면 위에서 다 휘발한 뒤에도 꽃으로, 나무로, 대지로, 갯벌로, 물풀로 다시 피는 것이다.유 근 오 ( 미 술 평 론 )
A Landscape floating between the retina and the subject
"The Universe (which others call the library) is composed of an indefinite, perhaps infinite number of hexagonal galleries." < Jorge Luis Borges > 『The Library of Babel』
In Jo Wonjeong's painting, the other side of the canvas may be either the land horizon or the sea horizon, perhaps this world or nirvana, but nonetheless, is considered somewhere very close. The is the term made because it is familiar, but there are no features that can be defined as something. Usually, art history refers to this type of painting as lyrical abstracts. The artist painted something passionately. It can be the artist's inner side, nature, or some phenomenon. So it's not wrong for the viewer to find something specific on the canvas. The meaning and interpretation of what appears on the canvas are entirely open to the viewer. Furthermore, this is because not only can there be no way to prevent Pareidolia, a psychological phenomenon in which each viewer extracts a certain type from a subject that has no connection to each other, but it can also have a morphology and color that are not so familiar to the canvas. Some may feel the surface of a lake and dry water grass from the background of the pale green and brown lines, and some may feel the fresh air of dawn on a canvas consisting of the blueish background and a few lines. Jo's painting starts with a question about how abstracts are reproduced in art (here, reproduction functions in various ways). Jo’s work does not depict the subject itself, but depicts a floating image that doesn’t settle between the retina and the subject. This analysis is a very conceptual reasoning, but it is intended to capture any image floating in space, suggesting the potential pattern of the subject, the variability, and, more importantly, visual and perceptual skepticism about the existing entity.Looking at Jo's latest work from a point of view of reproduction, it is also true that the lack of concrete features sometimes makes one wonder if the artist even has any interest in a particular subject. Of course, Jo has been painting certain objects or landscapes since the early days as an artist: for example, landscapes or flowers such as a market alley, forsythia, and sunflowers. Perhaps, the abstraction in Jo’s work does not emerges all of a sudden, but is backed up by the preliminary work in the previous pieces to a considerable extent. The artist refrained from saying what he wanted to say, recorded the impression he received from the subject, and has only depicted the quintessence. However, it is not easy to tell what the current interpretation means to the viewer. Perhaps after Descartes, who called out, "To be a rational being, distrust your senses," the artist might have realized that realism is a form in which one only realizes uncertainty in the subject while trying to define it rationally and accurately. But the real intention of aesthetic codes to declare an end to something, including abstraction, is the methodology of restoring and extending the endangered forms. In any case, the point Jo is aiming for is somewhere between the main agent and the subject. Just as artists often share confidence and skepticism in their works, Jo, too, is not focusing on either the main agent or the subject perhaps because it is not clear at the moment (it can also be seen that confidence and skepticism have recently become the issue of new work that have been erased and added). In a way, objects and images may be separate issues in painting, but the artist does not deny that images are dependent and indicative on the subject that produced them. As his painting suggests, he paints a phenomenon that is entirely correlated with the image of the subject. Thus, an image is recognized as a medium between the subject and the retina, and the uncertainty and obscurity it possesses are becoming the de facto subject of the painting. Jo’s painting thus transcends the realm of semi-abstraction or semi-conception, where so-called conception and abstraction are mixed although it maintains a delicate rivalry between the main agent and the subject. Jo’s work is also seen as a case of expanding the recognition area of images that only stay in a fixed instant capture of the subject through the dismantling of the realistic forms.If so, the images in Jo's painting, although abstract, are paradoxically a more realistic representation of the reality of the phenomenon at the same time. If the realist painters sought constant exploration in search of clarity of things, Jo rather seeks to find a world of images accumulated in obscurity. This suggests that the intention to avoid attitudes to objects and to the world that have been based on a cognitive analysis to date was being preceded by a desire to reconsider the reproduction of an image world, such as relative analogy. The term “reproduction” feels deeply unfamiliar in abstraction, unlike in realism. Nevertheless, Jo reproduces abstraction. That it is expressed as reproduction indicates a change in the fixed perception system of the reproduction painting although it is also because the origin of the sensation is due in part to the natural landscape. As mentioned, it is not strange for the lyrical senses revealed in Jo’s work to contain certain form images. For this reason, whether it is this or that side of the form means nothing to Jo. He increasingly redoubles the ambiguity in his recent work, which paid attention to the colorful sensation that touches the skin vividly. Besides, it is very impulsive and expressive. Given this aspect, it is unlikely that we would err if we related his work to abstract expressionism. If previous abstraction or abstract expressionism were not quests for any subjects, but rather reflected questions about the reasons of the main agent painting, Jo's painting in this referent seems to occupy a different position. That does not mean that the artist focuses on the material properties of the medium though. It is concerned with the heavy breathing of expressionism. Such breathing, or energy, is not intended to adequately portray the nature collected in the artist's daily life, but rather to express how to draw it out of the body with his own media senses.It seems to be taking issue with time of the present rather than the space in painting. How can you define the present? Can you really perceive it? Is it just one of those moments of transition from the past to the future that you can't detect? It is an exquisite combination of peculiar boundaries of eternity and moments as it will always exist throughout the course of time. After all, the subject the artist encountered was not a single point in time, but the object/place that each time existed. Therefore, it is a belief that there is no absolute form that is solidified. In a way, as in any painting, even if the artist does not insist, it is the psychological landscape created when self-generated form and external form are merged. Here an “indefinite number, or perhaps an infinite number” of landscapes will be created as much as the number of the viewers. At this point, what he paints needs not be flowers, trees, water, or forests. The canvas is simply a place where images are shown to convey meaning borrowing forms and to express the images of reasoning through the body. Furthermore, he says that he borrows Merleau-Ponty’s physical phenomenology system, which refers to a "human as a body" to replace the rational entity of the modern era, and instantly puts the intrinsic presentness of the impression he remembered as a "body" on the canvas. The impression was not extracted from the subject by the artist, but provided by the subject. Thus, the image becomes blurred. This is because the diverse and unfamiliar sensory experiences that the subject conveys now cannot be described as an objective proposition or portrayed as a completely subjective impression.The vague image originated from a wave of passion rising from beneath the body. Raging drawing and coloring that seems to try to grasp the sensory present is no other than, as the artist himself confessed, the artist's struggle to “put the true feelings and emotions of the moment that have just been created on the canvas meticulously.” But it's not a struggle of pain, but a "play of painting” or "performance of amusement" that encounters the unknown world. The artist called it an interesting communication, but it is more like a correspondence. It is an interlocking relationship in which when the subject provides something, the artist responds to it, and conversely, when the artist is in a sad mood, the subject sheds tears. The artist self-analyzes that “rather than giving form to the subject as it is, he experiences natural gestures and excitement spring up when moving the brush as the body and mind lead in pursuit of the inspiration that nature conveys, and it is sometimes an inversed relationship.” For example, it is not about placing nature in the artist's own context of work, but rather it is close to listening to what the subject says. Also, "seeing" is the act of recognizing things through the retina in the form and color of things that light transmits. The artist not only sees that things he perceives may not be the same as what others perceive, but also that there may be differences depending on his own emotional state. For example, the yellow of the bright forsythia is a yellow ribbon waiting for the children of the Sewol ferry to return, and the light pink of the colorful cherry blossom on a spring day may appear to be the color of sadness and frustration at the same time. Is there anything in the world that stays always the same?! Can you clearly define what it really is?! Some say, “Don't stay in any truth. Do not build a house there, considering it only as a tent for a summer night.” This is said with the relativity and liquidity of truth in mind.In addition, the term “an absolute or objective image” is not appropriate because painting itself is an act of separating a situation from a certain time and space, namely an act of making a sensory choice, which inevitably requires the artist's artificial intervention, or "excluding." Therefore, the images Jo has painted are not something concrete, but something that looks like a thing or not, or something that reflects the artist's inner self. In his recent works, Jo’s inner gaze largely maintains a microcosmic view. The sudden physical appearance of the lines running through the body along with the colors does not clearly reveal any specificity or physical presence. The images formed by these lines and colors are a way of keeping the viewer's focus in the gray area of the visible and non-visual. Jo's painting induces the viewers to extend the microscopic perspective to recognize different macroscopic shapes. Looking close from the viewer's point of view, the subject's ambiguity may become a fantasy. And the speed and elegant colors that make you sense the artist’s breathing play the role of amplifying this fantasy. Furthermore, the psychological fantasy, accompanied by ambiguity, reveals a different level of aesthetic sensibility from the existing paintings. What Jo's work suggests to the viewer is that it discovers the hidden forms of the landscape and in the process re-recognizes the distance between the subjects, in other words the fact that there is a time/visual deviation in perceiving the subject. It is meaningful that the changed image of nature, which is subject to silence (because the language of plants and humans is different), has been recorded as "nature (it is of itself)" beyond the image appealing to the fitness of the shape through a long period of deep observation and memory. After all, the basic prerequisites for dealing with nature are similar to the reproductive paintings of the past, but one difference is that the latest work style of the artist captures an intuitive image of the aesthetic order that combines nature with his inner side based on inspiration from abstract indicators contained in the landscape. “Intuitive” here refers to the fusion of chance and inevitability. In other words, his work is not based on “full impassivity” or “full intention.” Therefore, an art work should be open to coincidences, but they require a thin set of necessary links that do not let them scatter. Although his work may seem vague, the reason why it stimulates our view is that his painting, which are expressed with the artist's own inner view, shows landscapes adapted by the artist and nature, and creates a scene that exudes a deep sense of artistic scent by deflecting the boundaries of the dichotomous aesthetic form very effectively. This is now the time and space of returning to self/nature beyond the others of nature, not something of someone specific. To prove the lack of distinction, the brush was so busy running on the canvas that it was driven by nature. That's why the yellow, red, blue, green, and black forms bloom again as flowers, trees, land, mudflat, and water plants even after they are all volatilizing on the canvas.
Yu Geun-oh (Art Critique
2014 )미국의 저술가 마이크 메이슨(Mike Mason)은 자신의 삶에 기쁨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90일간의 실험여정에 나섰다. 그는 크든 작든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면 빠짐없이 노트에 적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이슨은 양지바른 들판의 미세한 색조를 보는 일이 하루의 정점이자 자신에게 가장 깊은 기쁨을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날 다른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그 색조의 광경이 제일 선연했고, 거기서 가장 큰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메이슨과 같이 일반적으로 우리는 평범한 나날을 보내며 그곳에서 기쁨과 지루함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다 맞출 것인지가 관건인데 대부분은 일상의 분주함에 쫓겨 오늘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내기 일쑤이다. 사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커다란 일이 아닌, 조원정이 보여주듯이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조원정은 현재 그가 마주하는 것들을 예의주시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조원정이 눈을 돌리는 것은 들녘의 야생화, 정원 또는 꽃병속의 꽃이다. 그에게 꽃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꽃들이 말하는 소리도 함께 듣고 느끼는 즐겁고 흥미로운 작업”인 동시에 “각양 색깔과 율동과 형태 등으로 변환시켜갈 때 얻는 무한한 자유로움과 유쾌함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매우 행복한 세계로 빠져 들게 한다.”고 말한다. 이해인시인이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 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 향기에 취해 멀미가 난다”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의 그림에서 작가의 ‘꽃멀미’를 느낄 지경이다. 꽃은 그 자체로 귀중할뿐더러 꽃을 보는 내내 망중한의 여유를 갖게 한다. 조원정은 꽃의 향기와 생명력,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명체를 그려가는 과정에서 커다란 희열을 얻고 있다. 그의 그림은 꽃의 존재론적 의미를 부각시키려고 했기 때문인지 꽃의 세세한 자태나 모양보다는 꽃이 주는 강렬한 생명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색깔에 있어서도 파랑이나 노랑,초록 등 원색이 주조를 이루며 숨 가쁜 필선들이 화면에 활력을 더해주고 있다. 그리하여 벅찬 생명에 충일한 자연의 모습이나 찬란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강렬한 색상에다 속도감있는 필선을 통해 자연의 기운을 실어내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는 주어진 대상을 세상에서 유일하게 특별한 존재로 여긴다. 이 불변의 법칙은 조원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원정에게 꽃이란 “부단한 흔들림과 수줍음, 거침없음과 다소곳함, 속삭이기도 하지만 소란스런 존재, 강함과 부드러움”을 지니는 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치 사람과 같이 생김새도 다양하고 우여곡절을 지닌 존재로 파악된다. 그의 공감능력은 드러난 부분과 함께 숨겨진 부분까지 헤아리는 데서 점검된다. 우리는 화려한 외모에 시선을 빼앗기기 쉽지만 꽃이 피기까지의 고통의 과정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화면의 그늘진 부분은 바로 이러한 고통의 과정을 연상시킨다. 꽃이 피기 위해서 씨앗은 어둠속에서, 춥고 습한 땅속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꽃을 본다는 것은 어쩌면 그 시련속에서 피어낸 슬프고도 찬란한 잉태물을 보는 것인지 모른다. 작가가 그런 꽃을 그리면서 즐겁고 행복한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고 말한 것은 꽃에게서 인간이 경험한 것과 비슷한 것을 느끼고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근래에 들어와 그의 화풍은 대상에 얽매이기보다 형태는 해체되고 색깔과 붓질이 한층 강조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종전에 보였던 다소 서정적인 기조 대신 표현적인 분위기가 남성적인 필치에 실려 숨 가쁘게 화면에 펼쳐진다. 꽃밭이나 자연물을 바라볼 때 그곳에서 느껴지는 원초적인 힘이 자아속에 잠재된 에너지와 결합되어 긴장되고 격정적인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하게 되는 셈이다. 회오리치는 듯한 붓질과 넘실거리는 색채의 물결, 필선의 선율 등이 근래의 작품에 자주 목격된다. 화풍상으로 보면 조심스럽던 반추상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추상의 궤도로 나아간 형국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표현력의 강도에 비해 밀도있는 조형의 짜임이 조금 아쉽기는 하나, 작가는 지금도 마음의 카메라를 오늘의 순간에 돌려 그속에 의미있고, 기쁨이 담겨있는 장면을 찾아낸다. 결국 예술이란 작가가 무엇을 응시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지바른 정원, 또는 꽃밭과 같은 가장 평범한 일상속에 자리한 식물은 스스로 꾸미거나 애쓸 필요도 없이 창조된 형상대로 제각기 아름답거나 향기를 발산한다. 모든 생명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들은 충분히 가치를 지니며 우리에게 이상적인 모습을 제공한다. 이런 발견들이야말로 우리 삶을 한층 풍요롭게 하는 요소들이 아닐까. 바로 이것이 조원정의 그림에서 찾게 되는 의미의 지점이다.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About the <Garden> series of Cho Won-jeong American writer Mike Mason set out on a 90-day experiment to see how close his joy was to his life. He wrote down notes in his notebook, whether it was big or small, to give him pleasure.One day, however, Mason realized that seeing the fine hues of sunny fields was the culmination of the day and gave him the deepest joy. There was another pleasant occasion that day, but the sight of the hue was the best, and he said that he felt the greatest joy there. In general, like Mason, we tend to spend a normal day and repeat joy and boredom there. The key is to decide where to match our gaze, and most of the time, we are being pushed out of our everyday bustle to spend the day. In fact, what gives us pleasure may not be a big deal, but a trivial thing, as Cho Won-jeong shows. Cho Won-jeong keeps a close eye on what her faces now. But, unexpectedly, it is the flowers in the wild flowers, gardens, or vases of the field that she turns her eyes to. What does it mean to draw flowers to her? She said, "Drawing a picture is a fun and exciting work to hear and feel the sounds of flowers", and at the same time, "The infinite freedom and joy of being transformed into a variety of colors, rhythms, and forms, allows her to fall into a very happy world while drawing," she says. Like poet Lee Hae-in said, "If she meets too many people, she gets drunk with words and gets motion sickness/treats the flowers too much, she gets sick from the scent.", I feel the artist's 'floral motion sickness' in her paintings. Flowers are valuable in their own right, and give them a huge margin of relaxation throughout their viewing. Cho Won-jeong is not only fascinated by the scent, vitality and beauty of flowers, but also enjoys great joy in the process of painting life. Perhaps her paintings are intended to emphasize the ontological meaning of flowers, so she tends to emphasize the intense life sense of flowers rather than the details and shapes of them. In color, primary colors such as blue, yellow, and green are cast, and breathable brush strokes add vitality to the picture.Therefore, it is reminiscent of nature's fullness to life or glorious scenes. So, it is carrying the energy of nature through intense colors and quick strokes. An artist considers a given object to be the only special being in the world. This immutable law would be the same for Cho Won-jeong. For Cho Won-jeong, flowers tell a lot of stories, including “constant shaking and shyness, outspokenness and somewhat modesty, whispering but noisy existence, strongness and tenderness.” It looks like a person with a variety of appearances and twists and turns. Her empathic ability is checked with the revealed parts and the hidden parts. We are easy to attract our attention to the gorgeous appearance, but it is not easy to think of the process of suffering until the flowers bloom. The shaded part of the picture reminds us of this process of pain. In order for the flowers to bloom, the seeds must wait in the dark, in the cold, wet ground. We do not know if we are seeing the flowers, maybe seeing the sad and brilliant conception bloomed in the trials. It may be because the artist feels and empathizes with the similar things human experience in flowers that she said she takes a pleasant and happy healing time while painting such flowers. In recent years, her style of painting tends to disintegrate in form and put more emphasis on color and brush strokes rather than being tied to objects.Instead of the rather lyrical tone previously seen, the mood of expression is displayed in masculine strokes and is breathlessly displayed on the screenWhen she looks at a flower garden or a natural object, the raw force felt there is combined with latent energy in her self, which leads to a tense and passionate drama. The brush strokes that look like whirlwinds, the waves of colors that overflow, and the melody of drawings are often seen in recent works. In the style of painting, it is a pattern that moves more or less aggressively toward the abstraction on the careful half-abstract. However, this work is a little bit disappointing for its dense formulation compared to its expressive strength, but the artist still turns the camera of the mind to the moment of today and finds a meaningful and joyful scene in it. In the end, art can be said to have different reactions depending on what the artist looks at. Plants placed in the most ordinary everyday life, such as a sunny garden or a flower garden, are beautiful and fragrant in their own created shapes without the need to decorate or care for themselves. The images of all life living in harmony are of sufficient value and provide an ideal picture for us. Wouldn't these discoveries be the factors that enrich our lives? This is the point of meaning to be found in the paintings of Cho Won-jeong. Seo Seong-rok (Professor of Art at Andong University
근래에 들어와 그의 화풍은 대상에 얽매이기보다 형태는 해체되고 색깔과 붓질이 한층 강조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종전에 보였던 다소 서정적인 기조 대신 표현적인 분위기가 남성적인 필치에 실려 숨 가쁘게 화면에 펼쳐진다. 꽃밭이나 자연물을 바라볼 때 그곳에서 느껴지는 원초적인 힘이 자아속에 잠재된 에너지와 결합되어 긴장되고 격정적인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하게 되는 셈이다. 회오리치는 듯한 붓질과 넘실거리는 색채의 물결, 필선의 선율 등이 근래의 작품에 자주 목격된다. 화풍상으로 보면 조심스럽던 반추상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추상의 궤도로 나아간 형국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표현력의 강도에 비해 밀도있는 조형의 짜임이 조금 아쉽기는 하나, 작가는 지금도 마음의 카메라를 오늘의 순간에 돌려 그속에 의미있고, 기쁨이 담겨있는 장면을 찾아낸다. 결국 예술이란 작가가 무엇을 응시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지바른 정원, 또는 꽃밭과 같은 가장 평범한 일상속에 자리한 식물은 스스로 꾸미거나 애쓸 필요도 없이 창조된 형상대로 제각기 아름답거나 향기를 발산한다. 모든 생명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들은 충분히 가치를 지니며 우리에게 이상적인 모습을 제공한다. 이런 발견들이야말로 우리 삶을 한층 풍요롭게 하는 요소들이 아닐까. 바로 이것이 조원정의 그림에서 찾게 되는 의미의 지점이다.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About the <Garden> series of Cho Won-jeong American writer Mike Mason set out on a 90-day experiment to see how close his joy was to his life. He wrote down notes in his notebook, whether it was big or small, to give him pleasure.One day, however, Mason realized that seeing the fine hues of sunny fields was the culmination of the day and gave him the deepest joy. There was another pleasant occasion that day, but the sight of the hue was the best, and he said that he felt the greatest joy there. In general, like Mason, we tend to spend a normal day and repeat joy and boredom there. The key is to decide where to match our gaze, and most of the time, we are being pushed out of our everyday bustle to spend the day. In fact, what gives us pleasure may not be a big deal, but a trivial thing, as Cho Won-jeong shows. Cho Won-jeong keeps a close eye on what her faces now. But, unexpectedly, it is the flowers in the wild flowers, gardens, or vases of the field that she turns her eyes to. What does it mean to draw flowers to her? She said, "Drawing a picture is a fun and exciting work to hear and feel the sounds of flowers", and at the same time, "The infinite freedom and joy of being transformed into a variety of colors, rhythms, and forms, allows her to fall into a very happy world while drawing," she says. Like poet Lee Hae-in said, "If she meets too many people, she gets drunk with words and gets motion sickness/treats the flowers too much, she gets sick from the scent.", I feel the artist's 'floral motion sickness' in her paintings. Flowers are valuable in their own right, and give them a huge margin of relaxation throughout their viewing. Cho Won-jeong is not only fascinated by the scent, vitality and beauty of flowers, but also enjoys great joy in the process of painting life. Perhaps her paintings are intended to emphasize the ontological meaning of flowers, so she tends to emphasize the intense life sense of flowers rather than the details and shapes of them. In color, primary colors such as blue, yellow, and green are cast, and breathable brush strokes add vitality to the picture.Therefore, it is reminiscent of nature's fullness to life or glorious scenes. So, it is carrying the energy of nature through intense colors and quick strokes. An artist considers a given object to be the only special being in the world. This immutable law would be the same for Cho Won-jeong. For Cho Won-jeong, flowers tell a lot of stories, including “constant shaking and shyness, outspokenness and somewhat modesty, whispering but noisy existence, strongness and tenderness.” It looks like a person with a variety of appearances and twists and turns. Her empathic ability is checked with the revealed parts and the hidden parts. We are easy to attract our attention to the gorgeous appearance, but it is not easy to think of the process of suffering until the flowers bloom. The shaded part of the picture reminds us of this process of pain. In order for the flowers to bloom, the seeds must wait in the dark, in the cold, wet ground. We do not know if we are seeing the flowers, maybe seeing the sad and brilliant conception bloomed in the trials. It may be because the artist feels and empathizes with the similar things human experience in flowers that she said she takes a pleasant and happy healing time while painting such flowers. In recent years, her style of painting tends to disintegrate in form and put more emphasis on color and brush strokes rather than being tied to objects.Instead of the rather lyrical tone previously seen, the mood of expression is displayed in masculine strokes and is breathlessly displayed on the screenWhen she looks at a flower garden or a natural object, the raw force felt there is combined with latent energy in her self, which leads to a tense and passionate drama. The brush strokes that look like whirlwinds, the waves of colors that overflow, and the melody of drawings are often seen in recent works. In the style of painting, it is a pattern that moves more or less aggressively toward the abstraction on the careful half-abstract. However, this work is a little bit disappointing for its dense formulation compared to its expressive strength, but the artist still turns the camera of the mind to the moment of today and finds a meaningful and joyful scene in it. In the end, art can be said to have different reactions depending on what the artist looks at. Plants placed in the most ordinary everyday life, such as a sunny garden or a flower garden, are beautiful and fragrant in their own created shapes without the need to decorate or care for themselves. The images of all life living in harmony are of sufficient value and provide an ideal picture for us. Wouldn't these discoveries be the factors that enrich our lives? This is the point of meaning to be found in the paintings of Cho Won-jeong. Seo Seong-rok (Professor of Art at Andong University